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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들이 갖고 있는 최초의 순간들은?

  • 기사입력 2019.01.28 16:36
  • 기자명 오토트리뷴

[오토트리뷴=김예준 기자] 최근 들어 국산차들의 높은 상품성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다양한 수상실적을 기록했다. 국산 자동차 제조사들의 역사는 해외 제조사들보다 짧은 편이기 때문에 몇몇 수상 기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펼쳤던 국산차들의 최초의 순간들을 모았다.

▲ 사진출처 :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 시-바ㄹ, 최초의 국산차

6. 25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흔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는 시작됐다. 1955년 종전 후 미군들이 타다가 버리고 간 윌리스 MB 지프 차량을 모았고, 사용 가능한 부품만을 모아 제작한 시-바ㄹ은 최초의 국내 최초로 만든 자동차를 기념하기 지어진 이름이다.


▲ 사진출처 :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1955년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출품하면서 유명해진 시-바ㄹ은 대통령 상까지 수상하며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는 차량을 구매할 때 할부의 개념이 전무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차량을 구매하기 위해 계모임도 구성했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버려진 군용 차량에서 부품을 수급해야 했고, 수제작이기 때문에 차량 제작에는 수개월이 소요됐다. 1963년까지 약 3,000대가 팔렸지만 새나라자동차와 경쟁에서 밀린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가 문을 닫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대 포니, 국산 최초의 수출차량

1967년 본격적인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든 현대는 초반엔 포드와 메르세데스-벤츠, 미쓰비시 등과 기술 제휴를 맺고 차량을 생산했다.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의미에서는 국산차가 맞지만, 완전히 독자 기술로 개발한 모델들은 아니었다. 해외의 자동차 제조사들과 맺은 기술 제휴로 기술력이 쌓이기 시작한 현대차는 1976년 기술제휴 없이 독자 개발한 고유 모델 포니를 탄생시켰다.



기존에 생산했던 모델들은 해외 제조사들과의 기술 제휴로 개발한 것들이라 수출이 불가능했지만,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포니는 아무런 제약 없이 해외에 처음 수출한 모델이다. 에콰도르에 5대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700대 등을 포함해 첫해 수출 물량은 1,019에 달했다. 현대차가 수출을 시작한 지 41년이 되는 2018년에는 처음으로 유럽 판매량 100만 대를 넘겼다.



현대 스쿠프, 국산 최초의 스포츠카

1990년 탄생한 스쿠프는 국산 최초의 스포츠카다. 스쿠프는 특종을 뜻하는 스쿱과 쿠페의 합성어로 이름처럼 스포티한 디자인이 주된 특징이다. 당시 판매되던 차량들 대부분이 세단과 SUV, 해치백처럼 실용적인 모델들이었지만, 스쿠프는 스포티한 디자인을 택해 당시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손꼽혔다.



스쿠프의 개발명은 스포츠 루킹 카의 앞 글자를 딴 SLC였는데, 당시 현대의 기술력은 스포츠카를 만들 정도로 높지 않아 정통 스포츠 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스포츠카처럼 날렵하지만,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은 현대 엑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 높은 성능을 기대 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1991년 출시된 터보 엔진을 장착한 스쿠프 터보는 국산차 중 최초로 200km/h의 벽을 넘어서 최고 속도 205km/h를 기록했다. 스쿠프는 국산 승용차 최초 가솔린 터보 엔진 장착 모델이기도 하다.



쌍용 칼리스타, 국산 최초의 컨버터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쌍용은 SUV만 생산하는 브랜드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1990년대 쌍용은 국산 최초의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만든 이력이 있다. 영국자동차 제조사 팬더 웨스트윈즈에서 제작한 리마를 기원으로 한 칼리스타를 제작하게 된다. 리마는 1930년대 영국식 전통 로드스터를 표방하고 있어 클래식한 외관이 특징이며, 완전 수제작 키트 방식의 차량이다.


1987년 경영 악화로 팬더 웨스트윈즈 사는 쌍용에 매각돼, 리마의 소유권도 함께 넘어가게 됐다. 쌍용 브랜드로 만드는 국내 최초의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탄생한 배경이다. 칼리스타는 2리터와 3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는데, 3리터 V6 가솔린 엔진의 경우 최고출력 145마력으로 성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가벼운 무게로 인해 최고속력은 208km/h, 0-100km/h의 가속시간은 8.45초로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수제작 차량인 만큼 가격이 비싸 애초에 계획했던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 판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고, 연간 20대 내외의 판매만 이뤄졌다. 수출을 포함한 칼리스타의 최종 판매 대수는 78대로 지금도 간혹 등장하는 일부 차량들은 고가로 거래되곤 한다.



쌍용 코란도 훼미리, 파리-다카르 랠리 최초 완주

1988년 출시된 코란도 훼미리는 이전의 투박하고 각진 형태에서 벗어나, 현대 SUV 들과 비슷한 형태의 5도어 스테이션왜건형으로 만들어져, 한국 SUV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차량으로 기록된다. 원래의 계획은 거화 자동차 시절인 1982년부터 출시가 계획됐지만, 당시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와 쌍용차의 전신인 동아 자동차의 인수 문제 등으로 인해 시간이 다소 흐른 뒤 쌍용자동차에서 출시됐다.


파리-다카르 랠리는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시작해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종단하는 경주로 자동차의 성능보단 내구성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완주하는 데 최대 보름까지 걸리기도 하는 이 경기는 경로가 험난해 중간에 탈락하는 차량들도 많은 난코스 중 하나다. 코란도 훼미리는 91년 파리-다카르 랠리를 완주했고, 최종 8위를 기록해 많은 화재를 모았다.



현대 다이너스티, 국산 최초의 리무진

1999년 에쿠스가 출시되기 이전까지 국내 최고급 국산 세단을 차지한 모델로, 뉴 그랜저의 고급형 모델이다. 뉴 그랜저의 차체는 그대로 사용했지만 보닛, 그릴, 트렁크 모양 등을 변경했다. 그러나 부분변경인 만큼 실내의 구성과 디자인은 그대로 이어갔다.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안동 하회마을 방문 당시 엘리자베드 여왕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의 의전차로 사용됐다.



다이너스티는 뉴 그랜저와 달리 리무진 버전도 팔렸다. 기존 다이너스티보다 150mm 더 긴 휠베이스를 갖고 있어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췄다. 또한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돼 안락한 승차감과 일정한 높이의 차고를 유지했다. 수입 플래그십 세단들처럼 뒤 도어를 늘린 장축형 리무진으로 일반 모델과 외관상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리무진 버전은 1997년부터 1998년까지만 판매됐는데, 에쿠스와 판매 간섭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기아 모하비, 국산 최초의 V8 엔진 장착 SUV

2008년 출시된 대형 SUV인 모하비는 동급의 현대 베라크루즈와 달리 프레임 바디를 사용해 정통 오프로드 SUV를 표방했다. 베라크루즈와 동일한 엔진을 사용하지만, 출력은 후륜구동인 모하비가 약간 더 우세했다. 또한 북미 전략형 모델로 기획돼 베라크루즈 보다 다양한 출력의 엔진을 장착했다.



3리터 디젤 엔진이 주력이었지만, 국산차 중 몇 대 없는 4.6리터 V8 가솔린 엔진도 장착했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4.4kg.m를 발휘해 역대 국산 SUV 중 가장 높은 배기량과 출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배기량 엔진인 만큼 복합연비는 7.3km/l로 낮은 편이라, 3리터 디젤엔진의 10.2km/l와는 차이가 컸다. 대배기량의 가솔린 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낮아 2011년 연식변경을 거치며 단종됐다.


kyj@auto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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