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양봉수 기자] 현대 스타리아 라운지를 컴팩스알브이 유로밴으로 개조한 이후, 여행을 다니는 일이 더 잦아졌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멀리, 가장 계획 없이, 가장 오랜 기간 다녀온 제주도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현대 스타리아 라운지를 캠핑카로 개조한 일상은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을 해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큰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금전적인 부담이 줄었고, 여행지가 멀어도 과감하게 출발할 수 있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습니다. 또 숙박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줄었죠. 일정에 대한 부담감도 줄었고요. 사실상 모든 면에서 걱정보다 일단 가서 생각하는 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퇴근 직후, 아이들을 위한 몇 벌의 옷만 챙겨서 네 가족이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는 없었고, 목적지가 없는 게 이날 퇴근박의 콘셉트였습니다. 원주에서 서울방향, 충주방향, 강릉방향, 대구방향 등으로 갈 수가 있는데, 길 따라가다 보니, 제천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목적지 없이 출발을 하는 듯 했지만, 와이프와 저는 목적지로 서로 제주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연애할 때도 그렇고, 서로 제주도 가본 적이 없고, 캠핑카 출고하면 제주도 가자고 했었잖아. 매번 비용 따지다가 못 갔는데, 이번에 가볼까?"라는 의견에, 와이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출발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이미 시간은 오후 7시를 넘겼는데, 다행히 여수신항에서 새벽 1시 20분쯤 출발하는 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제주 여행 계획을 즉흥적으로 잡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차에서 간식을 먹거나 TV를 시청하다가 잠이 든 채로 여수에 도착했습니다.
고맙게도 평상시에는 너무나도 정확했던 내비게이션이 이날 따라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바람에 잠깐 헤매는 시간도 있었는데요. 다행히 배에 차량을 주차하거나, 승선하는 과정 자체는 첫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첫 경험이어서 그런지, 자다 깼는데, 잘 따라줘서 다행이었습니다.
너무 갑자기 예약한 탓에 우리 가족은 총 9개 객실 중에 가장 비싼 스텔라 스위트룸에서 1박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박에 56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미리 예약한다면 30만 원대 이하로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물론 차량 선적료는 별도이기 때문에 이날 제주도로 향하는 비용만 기름값과 통행료를 포함해서 90만 원 정도 썼습니다.
스위트룸은 호텔 수준은 아니지만, 고급 크루즈도 아닌 일반 배에서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컨디션이었습니다. 창도 많고, 침대와 간이침대, 그리고 별도의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의미는 없었지만, 파우더룸과 두 개의 TV도 있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죠. 비싼 비용을 치른 만큼 잠부터 푹 자기로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아침에 내리자마자 여행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제주도에 도착해서는 고등어조림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저희 가족이 선호하는 진한 맛이 아니었다는 점이 아쉽긴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주문한 고등어구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맛있어서 어쨌든 아침은 그렇게 잘 먹었습니다.
지인이 추천해 준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잠깐 여유도 부려보다가, 오후에는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해 제주도에 거주하는 친구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는 카트가 있어서 양쪽에서 나란히 앉아 아이와 카트를 타며 제주도를 느끼고 즐겼습니다.
첫날밤은 제주도에서 차박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추천해 준 곽지해변이라는 곳에 갔는데,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고, 풍경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캠핑장이 아니라면 차에서 음식을 해먹는 것을 극도로 지양하기 때문에 주차 후,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돌아와서 일찍 잠자리를 세팅했습니다.
네 가족이 자기 위해서는 적어도 팝업 루프 텐트는 세팅을 했어야 했는데, 밤이 되니 추워서 유로밴에만 있는 내피로 사용할 수 있는 방풍 텐트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무시동 히터를 약하게 틀고 자니, 더울 정도로 난방은 합격이었습니다.
유로밴에는 샤워 시스템이 있지만, 일을 번거롭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간단한 세면과 양치 정도만 했습니다. 배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고, 다행히 이날은 땀도 흘리지 않았다면서 적당히 합리화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것 전부 따지면 차박이나 캠핑은 정말 피곤하기만 하죠. 그리고 화장실은 근처 공용 화장실을 이용했으며, 아이들은 포타포티 변기를 활용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밤에 옆에서 자던 아들이 깨서 "아빠, 누가 밖에서 차를 흔드나봐"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누가 흔드나 싶을 정도로 차가 흔들렸죠. 특히나 팝업 루프 텐트를 개방하고 있으니, 바닷가 바람에 차량이 더 흔들렸던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은 잘 잤습니다. 2층에는 매트리스 스프링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강한 바람 덕분에 유로밴의 내구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차량 내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면서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고, 하늘도 맑지는 않았지만, 그저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
웨이팅 있는 곳은 절대 가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니 점심은 버거 맛집을 찾아 1시간 웨이팅까지 버텨가면서 결국 해결하고 말았습니다. 또 버거를 먹고 아이들과 잠시 숨바꼭질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이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였던 거 같습니다.
제주도 2일차에는 버거를 먹고 오후 내내 제주 시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주도 대형마트에 진입하면서 전고 문제로 주차장 진입을 못할까 불안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제한 높이가 2.1미터여서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른 캠핑카였다면 이런 것도 불편했을 텐데 말이죠.
이후에는 친구 가족들과 흑돼지도 먹고, 자동차박물관이나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2일차부터는 감성펜션도 다녀오고, 가성비 펜션도 다녀오는 등 숙박은 숙소에서 해결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태워주고 싶어서 차량은 탁송으로 가져왔습니다. 비용은 갈 때보다 오히려 저렴하고, 일정상으로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게 맞아서 즉흥적으로 출발한 여행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캠핑카의 장점, 유로밴의 장점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우선 캠핑카로 개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어디서든 쉴 수 있다는 게 여행 기간 내내 여유를 갖게 했습니다. 또한 차고가 낮아서 마트 주차장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고속도로에서도 승용차와 동일한 주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새삼 만족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점도 알려드리고 싶은데, 방한텐트를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다는 점? 테이블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점, 아직은 이 두 가지 정도인 것 같습니다. 다음 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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